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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의 생 | 차도경 | 06.24 본문

염원의생

염원의 생 | 차도경 | 06.24

레몬동치미 2022. 6. 24. 18:27

 

 

 

 

 


은 언제나 받기만 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모두가 제게 손을 내밀었고, 일으켜 세워줬다.



 

  " 언니, 친구가 얘기를 해도 공감이 안 가는데 어떡해? 지루한데 일단 친구니까, 듣긴 듣는데 … 그 시간이 고역이야. "

 

정한이 턱을 괴곤 푸념을 털어놓았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이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정한에게 잔 하나를 내밀었다. 이나가 최근 취미로 만드는 레몬청 에이드였다.

 

  " 왜? 그 친구가 무슨 얘길 했는데? "

 

  이렇게 종종, 정한은 자신의 첫째 언니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대가족이지만 첫째 언니는 결혼을 하여 출가외인이 되었다. 본가에서 멀지 않은 곳, 정한은 언니의 집에 찾아가길 좋아했다. 늘 친절하고 정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으니까.

 

  " 그냥…, 같이 스키 타러 가자고 했는데 집안 형편이 안 좋다고 거절하는 얘기. 근데 후자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영어 단어 외우면서 들었어. "

 

  정한이 레몬청 에이드를 한 입 들이마시곤 말했다. 최근 들어 이런 일이 잦았다. 시험도 끝났겠다, 고등학교 진학 전 마음껏 놀러 다니고 싶었는데 꼭 친구 한 명의 사정이 어렵다며 취소됐다. 고작해야 스키장, 고작해야 1박 2일의 여행이 취소되어서 그럴까. 정한은 테이블에 늘어져, 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루해, 재미없어. 주변에 친구야 많았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건 늘 지루했다. 

 

  " 뭐…? "  

 

  이나는 자신이 들은 말이 이게 맞나? 싶은 표정으로 정한을 보았다. 물론, 정한은 테이블에 엎어져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나가 정한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 그래서 그 친구는 뭐라고 했는데? 이야기는 어떻게 끝났어? "

 

  정한은 자신을 일으키는 이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이어진 다급한 질문에 얼떨떨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끝났더라…?

 

  " 어…, 그냥 미안하다고. 자기 두고 놀러 가라고 해서 알았다고 했지? "

 

  그래서 정한은 '그' 친구를 제외한 다른 친구를 모아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은 불과 일주일 뒤였다. 이 이야기가 나온 건 무려 2주 전이었다. 굳이 언니를 찾아와 고민상담까지 하게 된 이유는 … 솔직히 말해, 정한이 귀찮아서였다. 그 일주일 간, 친구는 자신이 여행에 가지 못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집이 어렵다. 부모가 아닌 조부모와 살고 있다. 자신이 집을 비우면 집안일을 할 사람이 없다, 뭐 그런 설명들.

 

  정한이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이나가 엄한 표정으로 질책했다.

 

  " 너, 언니가 했던 말 하나도 안 듣고. 그동안 계속 이런 됨됨이로 지냈니? "

 

  " 이런 됨됨이라는 건 뭔데? "

 

  이나의 날카로운 말에 정한이 툭, 불만을 뱉었다. 기껏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돌아오는 말이 책망이었다. 이해도 안 될뿐더러, 자신의 편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떨떠름했다.

 

  " 너는 '너'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잖아. 그 친구의 사정을 헤아려 보고자 했니? 이해해보려고 시도는 해봤어? 네가 당장 불쾌한 것만 생각했지, 그 친구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았잖니. … 실망이야 정한아, 언니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

 

  정한은 잔을 어루만진 채 고개 들지 못한 채 그저 … 침음을 삼켰다. 언니에게 혼나는 일은 상당히 드문데, 이게 그렇게 까지 화 낼 일인가? 어리둥절한 정한을 보며 이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알려줄게. 이렇게 해보고도 이해가 되지 않거든, 그땐 다른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언니가 알려주는 대로 …"

 

  그래서 그날 정한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는지. 정한은 이 날을 잊지 못했다. 훗날 이 날의 기억이, 그 방법이 정한의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겠지만.

 

 

 

**

 

 

 

  " 손 잡는 법에 익숙해지면 그냥 응석받이로 자라게 된답니다. 손 잡아준 이에게 고마워하고, 또 그 마음을 기억해서 이후에 다른 이의 손을 잡아줄 줄 알아야 하거든요. "

 

  이건 뼈아픈 실책에서 나온 말이었다. 정한이 방긋 웃으며 도경을 보았다. 저 나이 무렵에 자신을 어땠던가. 한참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난 줄 알았고, 뭐든 성공할 거라 자만했었고 의심이라곤 한 톨도 하지 않았는데. 제 모습과 정반대인 도경을 보고 있으면 정한은 무의식적으로 입술 끝을 깨물게 되었다.

 

  " 이야기가 너무 급했나요? … 이게 내가 아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라서요. 도경 군을 이해해보고자 한답니다. 물론 싫다면 거절해도 좋아요. 강요는 당신도 싫어하니까요. 그렇죠? "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첫 째,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고 둘 째는 … 그 사람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그리 하면 이해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한은 도경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동시에 도경이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게 궁금했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너는 조금 더 빨리 뒤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우스운 제안이 아닌, 진짜 너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될까? 한 명도, 두 명도 아닌 정말 많은 이들이 널 필요로 하고 있다고. 허울뿐인 형제놀이어도 좋았다. 정한은 도경을 이해하고 싶었고, 나아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던 이들처럼 도경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정한이 도경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네가 잡는다면, 그렇다면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은 언제나 받기만 했다. 
가만히 서 있는 정한에게 내밀어진 손은 언제나 소중한 이들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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